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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스트, 日軍 강제동원 위안부 UN보고서 수정 불필요

글로벌 포스트, 日軍 강제동원 위안부 UN보고서 수정 불필요
-교도통신, 전직 유엔 보고관 인터뷰 ‘강제 성노예’ 증거 충분
-아사히 이전 기사 취소 여파에 명백한 입장 밝혀

일본이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 더욱 광분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군의 강제동원과 성노예 사실을 인정하고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한 UN 보고서를 작성했던 전 UN보고관이 보고서의 내정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문제가 갑자기 부상한 데에는 일본군의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기사를 실어왔던 아사히신문이 최근 이를 증언했던 일본군 남성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이 잘못 됐다며 자신들의 기사를 철회하면서 촉발됐다.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기사를 철회하자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아사히신문의 기사를 인용했던 1996년 UN보고서가 철회되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온 가운데 나온 이 보고서를 작성한 스리랑카 변호사 라디카 쿠마라스와미의 단호한 태도는 위안부 문제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일본의 전략에 일침을 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적인 국제문제 뉴스블로그인 글로벌포스트는 4일 ‘Correcting report on “comfort women” unnecessary: U.N. researcher-“위안부” 보고서 수정 필요치 않다: UN 보고관’라는 제목의 일본 교도통신의 보도를 링크시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에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쿠마라스와미는 ‘”우리는 특히 많은 한국인 위안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유괴된 것이 명백하며,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며 이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포함한 조사에서 군대가 여성들을 납치하기 위해 민간업자들을 고용했고, 여성들을 “막사 안으로 데리고 와 노예 상태에 놓이게 한” 사례들이 있음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녀는 이러한 여성들을 묘사하는 데 “성노예” 표현의 사용을 옹호하면서 “우리가 조사했던 내용은 분명한 성노예의 문제”였고 그들은 “탈출할 자유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여성 폭력에 관한 특별보고관이었으며, UN인권위원회 보고서들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지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아동 및 무력 분쟁에 관한 특별 대표인 유엔 사무차장으로도 재임했다.

일본이 전쟁의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가증스런 노력들은 최근들어 주로 위안부 문제에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아시히신문의 기사철회는 곧 강제동원 부분에 대한 아사히신문의 과거 기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일본은 마치 위안부 문제가 허구인 것처럼 공세를 벌여왔었다.

특히 일본은 일본의 부정에 쇄기를 박은 이 UN 보고서를 아사히신문의 기사를 인용했다는 이유로 철회해야 한다는 공세를 최근 벌여왔다. 뿐만 아니라 미국 하원에서 일군 강제동원 위안부 결의안이 나온 뒤 위안부 문제가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 사례로 홀로코스트와 함께 거론 되면서 일본은 미국 내에 세워지고 있는 기림비 철회 운동 등 맹렬한 활동을 벌여왔다.

기림비가 처음 세워진 뉴저지 펠리세이즈 팍의 경우 일본 대사관 관계자 및 일본 중의원 등이 방문해 막대한 경제지원을 미끼로 기림비를 철회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시 관계자들로부터 이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면박을 받고 기림비 철회 시도가 무산되기도 했다.

또한 현재 미국에서는 일본과 미국 내 한인사회, 또 기림비가 세워진 자치정부와의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역사적 사례들이 입증 되면서 일본의 위안부 성노예라는 천인공노할 범죄는 더욱 미국 사회의 공분을 얻으며 기림비 설립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현재 미국의 위안부상징물은 2010년 뉴저지 팰리세이즈팍에 1호 위안부기림비가 세워진 뒤 뉴저지 버겐카운티 청사앞, 뉴욕주 낫소카운티에 2기가 세워졌고,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 위안부기림비, 글렌데일의 위안부소녀상에 이어 지난 5월 버지니아 페어펙스 청사안에 기림비가 건립된 바 있다. 최근에는 지난 8월 4일 맨해튼과 마주한 뉴저지 유니온시티 정부가 맨해튼 입구인 링컨터널 방향에 위치한 ‘리버티 플라자’에 기림비가 세워지는 등 미 전역에 기림비 설립 확산되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글로벌포스트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elisabeth

기사 바로가기☞     http://bit.ly/1u7VFKB

Kyodo News International September 4, 2014 10:44am

Correcting report on “comfort women” unnecessary: U.N. researcher

“위안부” 보고서 수정 필요치 않다: UN 보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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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ormer U.N. researcher who compiled a report that urged Japan to apologize and pay compensation over the so-called “comfort women” issue said she sees no need to correct her report made public in 1996 that referred to testimony retracted recently by a major Japanese daily.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보상금 지불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던 전직 UN 보고관이 최근 일본의 한 주요 일간지가 보도를 취소한 증언을 인용해 작성되고1996년 공개된 그녀의 보고서를 수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We met many comfort women in Korea especially. It was very clear that they were abducted, by no means could one say they voluntarily joined,” Sri Lankan lawyer Radhika Coomaraswamy said in a recent interview with Kyodo News in Colombo.

“우리는 특히 많은 한국인 위안부들을 만났다. 그들은 유괴된 것이 명백하며,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고 스리랑카 변호사 라디카 쿠마라스와미가 콜롬보에서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In a review published in August, the Asahi Shimbun retracted its articles from the 1980s and 1990s that reported a Japanese man’s statements that women on the South Korean island of Jeju were forcibly and violently taken to work in brothels for the wartime Japanese military, admitting they were false. The man, Seiji Yoshida, has died.

8월에 보도된 논평에서 아사히신문은 한 일본 남성이 제주도의 한국 여성들이 전쟁 중인 일본 군대를 위한 사창가로 강제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끌려갔다는 증언을 보도한 1980년대 및 1990년대의 기사들을 철회하며 그 기사들이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증언했던 요시다 세이지는 이미 사망했다.

Though the 1996 report cited a book written by Yoshida, Coomaraswamy said his statement is “only one piece of evidence.”

쿠마라스와미는 비록 1996년 보고서가 요시다가 저술한 책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의 증언은 “단지 증거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She said her research including interviews with these women found there were cases in which the military had hired private parties to kidnap women, who “were brought and kept in a situation of slavery within the barracks.”

그녀는 이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포함한 조사에서 군대가 여성들을 납치하기 위해 민간업자들을 고용했고, 여성들을 “막사 안으로 데리고 와 노예 상태에 놓이게 한” 사례들이 있음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This is first time that Coomaraswamy, an expert on human rights issue and advocate of women’s rights, has met Japanese media since the Asahi retracted those previous articles.

아사히신문이 그러한 이전 기사들을 철회한 후 인권 문제 전문가이자 여성 권익 옹호자인 쿠마라스와미가 일본 언론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Despite claims from some quarters that the U.N. report was based on unreliable information, including Yoshida’s testimony, she defended use of the phrase “sex slaves” to describe such women, saying, “It was really a question of sexual slavery that we were looking at” and that they had “no freedom to leave.”

유엔 보고서가 요시다의 증언을 포함해 신뢰할 수 없는 정보에 근거한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러한 여성들을 묘사하는 데 “성노예” 표현의 사용을 옹호하면서 “우리가 조사했던 내용은 분명한 성노예의 문제”였고 그들은 “탈출할 자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On Japan’s stance on the sex slave issue, she said it is “very baffling” that Japan does not give justice to these elderly female victims and “acknowledge the wrongdoing,” given that the country’s general policy on human rights is “very progressive.”
성노예 문제에 관한 일본의 입장에 대해, 인권에 관한 일본의 일반 정책이 “매우 진보적” 임을 고려할 때 일본이 이렇게 나이 드신 여성 희생자들을 정당하게 대하지도,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는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In a 1993 statement issued by Chief Cabinet Secretary Yohei Kono, the government admitted that the Japanese military was involved in the establishment and management of such brothels for its troops and that its study has shown women were recruited against their will in many cases.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부는 일본 군대가 그들의 부대를 위한 이런 사창가들의 설치와 관리에 관여했던 것과 보고서가 많은 경우에 여성들이 본인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징집되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인정했다.

Yet the Japanese government has not still recognized the existence of evidence that women were forcibly and violently taken away, as stated by Yoshida.

하지만 일본 정부는 요시다가 증언한 바와 같이 여성들이 강압적이며 폭력적으로 납치되었다는 증거의 존재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Coomaraswamy said Japan’s current response is a retreat from 1995, when the Asian Women’s Fund was established to compensate former sex slaves, and added that “Japan should be large hearted” on this issue.

쿠마라스와미는 일본의 현재 태도는 이전의 성노예들에게 보상금을 주기 위해 아시아여성기금이 설립되었던 1995년보다 후퇴한 것이라 말하며, 아울러 이 사안에 대해 “일본은 대범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Coomaraswamy was special rapporteur on violence against women from 1994 to 2003 and published reports for the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Human Rights.

쿠마라스와미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여성 폭력에 관한 특별보고관이었으며, UN인권위원회 보고서들을 발행하기도 했다.

She also served as undersecretary 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special representative for children and armed conflict from 2006 to 2012.

그녀는 또한 지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아동 및 무력 분쟁에 관한 특별 대표인 유엔 사무차장으로도 재임했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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