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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글로브, 교황 박근혜 심기 불편 불구 세월호 리본 착용

보스턴글로브, 교황 박근혜 심기 불편 불구 세월호 리본 착용
-“고통 받는 인간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그것이 내가 한 말이다”
-특별법 제정 압박하고 정부의 비협조에 분노의 연대 표현으로 받아들여져

보스턴글로브가 방한 중 교황의 리본에 대해 명확한 해석을 내놓았다. 교황이 방한 중에 부착한 배지는 두 개. 하나는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고, 또 하나는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을 상징하는 나비 모양의 배지였다.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은 교황의 방한 이틀째부터 한국을 떠날 때까지 내내 교황의 제의에 달려있었고 일군 강제동원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나비는 교황 일정 마지막 날에 생존할머니들로부터 받아 그 자리에서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 보스턴글로브는 이 두 개의 배지가 주는 상징성에 대해 그것이 바로 교황의 방식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보스턴글로브는 23일 ‘Two pins in South Korea show a pope doing it his way
Also: A globalized papacy, support for US strikes, why the pope matters, and anxiety over anti-abuse commission-한국에서 두 개의 배지 착용으로 드러난 교황의 방식. 그리고: 세계화된 교황의 직무, 미국 공습 지지, 교황은 왜 중요한가, 성추행 대책 위원회를 둘러싼 우려‘라는 장문의 분석기사를 통해 프란시스코 교황의 배지 착용은 외교적 균형과 신중함이 아닌 교황의 진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기사는 프란시스코 교황과 세계정세, 그리고 바티칸 내부의 산적한 문제들을 분석하는 기사로 겉으로는 급진적이지 않은 교황이지만 교황이 곳곳에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전하며 교황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는 키워드로 방한 중 교황이 착용했던 두 개의 배지를 기사의 전면에서 언급한 것이다.

보스턴글로브의 John L. Allen Jr. 기자가 쓴 이 기사는 국가적인 분노를 유발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유가족들이 독립적인 범죄 수사권을 부여하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닷새 동안의 방한 기간 중 교황이 이 참사의 상징이 된 노란 리본 배지를 단 것이 ‘대부분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이것은 단순한 위로의 표현이 아니라 특별법 제정을 압박하고 정부의 비협조에 대한 분노에 연대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분석했다.

보스턴글로브는 교황이 배지를 달고나서 한나절이 지난 뒤 누군가가 ‘중립을 지켜야한다며 리본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히고 프란시스코는 이에 “하지만 고통 받는 인간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내가 한 말이다”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또한 그것이 내가 느끼는 바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이어 교황이 리본을 단 것은 실제 규범에서 얼마나 벗어난 것인지 강조할만한 가치가 있다며 역사적으로 교황들은 방문국가의 정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전제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이 “누군가” 리본을 떼라고 제안했다고 말했을 때, 그 자신의 외교 팀 중 한 명이 한국 대통령 박근혜의 심기를 거스를까 우려한 것이라 상상하는 것은 억측이 아니다라며 교황이 박근혜 정부의 불편함을 충분히 예상한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이 기사는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난 뒤 전해진 배지를 착용한 순간을 파격적 순간이라고 표현하며 일본으로부터의 어떤 정치적 역풍에 전혀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는 미사를 집전하는 성직자들이 따르게 되어있는 일상적인 관례에 맞서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보스턴글로브는 ‘”배지 사건”은 그 자체로 소소한 것이지만 프란치스코 시대의 뛰어난 역설을 강조한다’며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표면상 교황이 협력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격식을 무시하는 그의 구호는 때때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 “마이 웨이”처럼 보인다고 말한 뒤 교황의 질주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고 예상했다.

이 기사는 이 외에도 세계화된 교황의 지위, 이라크 공습을 지지하는 덧한 발언을 하면서도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지혜로운 제안, 성추행 등 바티칸과 가톨릭 내부에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보스턴글로브의 기사전문이다.

번역 감수: elisabeth

기사 바로가기☞     http://bit.ly/XQGGZu

 

Two pins in South Korea show a pope doing it his way
Also: A globalized papacy, support for US strikes, why the pope matters, and anxiety over anti-abuse commission

한국에서 두 개의 배지 착용으로 드러난 교황의 방식
그리고: 세계화된 교황의 직무, 미국 공습 지지, 교황은 왜 중요한가, 성추행 대책 위원회를 둘러싼 우려

By John L. Allen Jr. | GLOBE STAFF AUGUST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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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TTEE FOR THE 2014 PAPAL VISIT TO KOREA VIA GETTY IMAGES/FILE
Pope Francis waved to the crowd upon his arrival for Asian Youth Day earlier this month in South Korea.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 청년대회에 도착해 군중에 손을 흔들고 있다.

Understandably, reaction to Pope Francis’s latest airborne news conference on Aug. 18, during his return flight from South Korea to Rome, has centered on whether his comments on US airstrikes in Iraq represent an endorsement or a rebuke.

8월 18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진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최근의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대한 그의 입장이 지지인가 반대인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The pontiff played it down the middle, saying it’s legitimate to stop an unjust aggressor but that doesn’t necessarily mean dropping bombs and certainly not a “war of conquest,” and in any event it would be better to have a UN warrant.

교황은 정당하지 못한 침략행위를 막는 것은 합당하지만 그것이 폭탄을 떨어트리거나 “정복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며, 어떤 행위가 됐든 UN의 동의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Whatever one makes of the answer, everyone knew the question was coming and the pope had been prepped. His words seemed to reflect some diplomatic balance and circumspection, rather than his trademark spontaneity.

대답이 어떤 식으로 나왔든지 간에, 이 질문은 분명히 나올 테고 교황도 준비를 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의 답변은 트레이드마크인 자연스러움보다는 외교적 균형과 신중함을 반영하는 듯 했다.

If you want the best insight from that session into who Francis really is, you need to look elsewhere.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다른 각도의 성찰이 필요하다.

It came at the beginning, when a Korean journalist asked the pope about his outreach during the visit with families of victims of the April 16 Sewol ferry disaster, a shipwreck that claimed more than 300 lives, mostly high school students.

이러한 특징은 회견 초반 한국 기자가 교황의 방한 중 대부분이 고등학생인 3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4월 16일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희생자 가족에 보인 특별한 관심에 대해 물었을 때 드러났다.

It sparked national outrage in Korea, with families demanding a special law authorizing an independent criminal probe.

이 사건은 국가적인 분노를 유발했고 유가족들은 독립적인 범죄 수사권을 부여하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During his five days in the country, Francis wore a pin of a yellow ribbon that’s become the symbol of the disaster. In the minds of most Koreans, it not only expresses sympathy but also solidarity with the push for the special law and anger over the government’s failure to deliver.

닷새 동안의 방한 기간 동안, 프란치스코는 이 참사의 상징이 된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있었다. 대부분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이것은 단순한 위로의 표현이 아니라 특별법 제정을 압박하고 정부의 비협조에 대한 분노에 연대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Francis revealed that after he’d worn the pin for a half-day, someone came up and said, “It would be better to take it off . . . you’re supposed to be neutral.”

프란치스코는 배지를 달고서 한나절이 지나자 누군가 오더니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Francis said he replied, “Look, you can’t be neutral with human suffering.” “That’s what I said,” Francis said. “And that’s what I feel.”

프란치스코는 이에 “하지만 고통 받는 인간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내가 한 말이다”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또한 그것이 내가 느끼는 바다.”

While slapping a pin on his cassock might not seem a terribly big deal, it’s worth underlining just how much of a departure from the norm it actually was.

교황의 제의에 리본을 다는 것이 매우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것이 실제 규범에서 얼마나 벗어난 예외적인 것인지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

Historically, popes have been extremely reluctant to embarrass host governments when they travel. If they feel the need to wag a finger, they’ll do it behind closed doors rather than in full public view.

역사적으로, 교황들은 방문 국가의 정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다. 만약 그들이 비난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면, 그들은 대규모 군중 앞에서보다는 비공개로 그렇게 할 것이다.

The reason is obvious: Popes need the support of local governments to make these trips, and if politicians have to worry about being read the riot act, they might be less inclined to roll out a red carpet.

이유는 명확하다: 교황들은 이러한 방문행사에 현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고, 만약 정치인들이 엄중경고가 내려지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면, 그들은 레드카펫을 펼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When Francis said that “someone” suggested he remove the pin, it’s not a leap to imagine it was a member of his own diplomatic team, worried that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might be irked.

프란치스코 교황이 “누군가” 리본을 떼라고 제안했다고 말했을 때, 그 자신의 외교 팀 중 한 명이 한국 대통령 박근혜의 심기를 거스를까 우려한 것이라 상상하는 것은 억측이 아니다.

At the end of the trip, there was yet another maverick moment involving a pin.

여행 말미에, 배지와 관련된 또 다른 파격적인 순간이 있었다.

During a Mass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Monday, Francis greeted seven elderly Korean “comfort women” who had been forced into sexual servitude under Japanese occupation. They are national icons of the hardships of Japanese rule.

월요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동안, 프란치스코는 일제 강점기에 성 제공을 강요당했던 일곱 명의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을 맞이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의 역경의 국가적 상징이다.

One of the women presented Francis with a pin of a yellow butterfly, symbolizing their suffering. The pontiff placed it on his outer vestment, called a chasuble, and wore it during Mass.

그 여성들 중 한 명이 프란치스코에게 그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나비 모양의 배지를 선물했다. 교황은 그것을 샤쥐볼이라 불리는 겉 제의에 달았고 미사 내내 달고 있었다.

In addition to the pope’s apparent indifference to any political blowback from Japan, he was also defying usual practice for priests saying Mass. Church rules clearly discourage, though technically they don’t forbid, clergy from adding their own dashes to vestments.

일본으로부터의 어떤 정치적 역풍에 전혀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는 미사를 집전하는 성직자들이 따르게 되어있는 일상적인 관례에 맞섰다. 교회 규칙은 성직자들이 제의에 자신의 주장을 표시하는 것을, 엄밀히 말하자면 금하는 것은 아니지만, 명확히 못하게 하고 있다.

As one expert on liturgy put it, “The last thing you want is Father standing up there looking like a NASCAR driver . . . this sets a dangerous precedent, however noble the cause may be.”

한 전문가가 전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기에 신부님이 카레이서 같은 차림으로 서있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 . . 아무리 그 대의가 고귀하다 하더라도 이것은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

Yet here, too, Francis was undeterred.

하지만 여기에서, 역시, 프란치스코는 구애받지 않았다.

While minor in themselves, the “pin cases” underline a towering irony of the Francis era.

“배지 사건”은 그 자체로 소소한 것이지만 프란치스코 시대의 뛰어난 역설을 강조한다.

Francis has said he wants to promote collegiality, meaning shared decision-making, rather than imposing his will. Yet the diplomatic and liturgical customs he so cheerily upended in South Korea actually represent the collective wisdom of past popes, and in a sense the whole church, about how things ought to be done.

프란치스코는 교황의 의지를 강요하기보다 공유된 의사결정을 의미하는 평등한 성직자관계를 증진시키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그가 그렇게도 유쾌하게 외교 및 전례의 관례들을 뒤집은 것은 어떻게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과거 교황들, 어떤 의미에서 교회 전체의 집적된 지혜들이 표현된 것이다.

One could argue that the truly collegial act would be to submit to these protocols until a broad consultation has been held about whether they need to change. That, however, is not Francis’s style. When his gut and his heart tell him something important is at stake, he’s willing to act unilaterally on matters both large and small.

외교의례를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폭넓은 협의가 열릴 때까지는, 진정으로 평등한 행동은 외교의례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프란치스코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의 직감과 감성으로 뭔가 중요한 일이 위태롭다고 느끼면, 그는 중대한 일이나 사소한 일 모두 단독으로 기꺼이 행동한다.

This, to put it another way, is a pope ostensibly committed to collaboration, but whose informal anthem instead sometimes seems to be the Frank Sinatra classic “My Way.”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표면상 교황이 협력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격식을 무시하는 그의 구호는 때때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 “마이 웨이”처럼 보인다.

Theologians will have to sort out what all this means for the exercise of authority in Catholicism, but for now, Francis’s defiant comments on the pin seem to leave no doubt on one front: The wild ride under this pontiff is far from over.

이 모든 것들이 가톨릭 권위의 실행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신학자들이 정리해야 할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배지에 대한 저항적 발언이 한 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황의 질주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In terms of what’s next, the real answer is “Who knows?” Francis might have dropped a hint, however, when he revealed during the news conference that he weighed a surprise trip to Iraq after returning from South Korea, and that he’s still open to the idea.

다음에 어떤 행보를 할지에 대해서, 정답은 “누가 알겠는가?”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돌아온 후 이라크에 깜짝 방문을 고려 중이며, 아직 여러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힌트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Almost certainly, his advisers will offer a truckload of both security and diplomatic reasons why he ought to be careful. Just as surely, that’s no guide at all to what he’ll actually do.

거의 확실히, 교황의 조언가들이 교황이 조심해야 하는 안보상 외교상의 이유들을 잔뜩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확실히, 그것이 교황이 실제로 행하는 행보에 대한 지침은 결코 되지 못한다.

Globalized papacy

세계화된 교황의 지위

Overall, what the South Korea trip seemed to capture was what a truly globalized papacy, no longer conceiving of itself primarily as a Western institution, looks like in action. I unpacked that reading in a piece on the final day of the trip, which can be found here.

초기 서구의 기관으로 여겨진 것이 더 이상 아니라, 진정으로 세계화된 교황의 지위가 이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대체로 한국방문에서 포착된 듯하다. 나는 교황 방한 마지막 날 이 문제에 대한 기사를 썼다(here참조).

Support for US airstrikes in Iraq

미국의 이라크 공습 지지

On the subject of the use of force against the radical Islamic State group in northern Iraq, another senior Church official has offered what amounts to an endorsement.

이라크 북부지역의 극단적인 이슬람국가(IS) 반군에 대한 무력 사용이라는 주제에 대해, 교회의 또 다른 고위관계자는 무엇 때문에 지지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In an Aug. 21 interview with Italian television, Cardinal Philippe Barbarin of Lyon, France, said that “now is the time . . . to make ISIS disappear” through a combination of “political and military action.”

8월21일 이탈리아 텔레비전 방송 인터뷰에서, 프랑스 리옹의 필립 바바린 추기경은, “지금이 바로 ‘정치적 군사적 행동’으로 ISIS를 사라지게 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Barbarin spoke after the decapitation of American photojournalist James Foley, whom he described as “profoundly Catholic.”Barbarin, who’s widely seen as an influential figure in the Vatican, recently led a delegation of French bishops to Iraq. In the interview, he vigorously defended a military response.“John Paul II explained well in a time of war in the Balkans that sometimes pacifism is opposed to the progress of peace,” Barbarin said, insisting that the Islamic State “must be stopped from spreading more terror.”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묘사된 미국 사진기자 제임스 폴리의 참수 후에 바바린이 말했다. 바티칸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로 널리 알려진 바바린은 최근 이라크로 가는 프랑스 주교대표단을 이끌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무력대응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요한 바오로2세는 발칸반도 전쟁 당시 때로는 평화주의가 평화의 진전에 반하는 것이라고 잘 설명했다”며 ‘이슬람국가’는 “더 이상의 테러를 벌이는 것을 멈추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했다.

Barbarin also said that if France decides to join the US-led military action, he will “trust in the decisions of our governors.”If anything, Barbarin seemed to support widening the anti-Islamic State campaign, saying it would be a mistake to dismiss the leader of the self-proclaimed caliphate as a “madman.” “We must never underestimate this adversary,” he said. “We know that he’s well-armed and has demonstrated undeniable capacities. Don’t forget that he made Mosul fall at a time when it was guarded by the regular army in less than 24 hours!”Barbarin also suggested that Catholics around the world should pray the “Our Father” every day until Christian refugees from Mosul are allowed to return.

바바린은 또한 만일 프랑스가 미국이 주도한 군사행동에 합류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는 “정부의 결정을 신뢰할 것”이라 말했다. 바바린은 제멋대로 세운 칼리프 국가의 지도자를 그저 “미치광이”로 무시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 말하면서 오히려 반‘이슬람국가’ 공격의 확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결코 이 적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그가 무기를 갖추고 부정할 수 없는 능력들을 입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모술이 정규군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을 때 24시간 이내에 단번에 모술을 함락시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바린은 또한 전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모술의 그리스도교 난민들이 돌아가도록 허락될 때까지 “하느님 아버지”께 매일 기도할 것을 제안했다.

Why the pope matters

교황이 왜 중요한가

Skeptics might wonder why it matters what a pope thinks about the US bombing campaign in Iraq, or any other political question. Since the pope is merely a religious leader, with no armies to deploy and little economic muscle to flex, who cares? One snappy answer would be that if you don’t believe a pope can influence the course of history, you ought to talk to former Soviet apparatchiks across Eastern Europe who found themselves out of work partly because of the role the late John Paul II played in the collapse of Communism. If that’s not enough, we recently got a fresh reminder that papal interventions can make a difference, this one with regard to Francis.

회의론자들은 이라크에서 미국의 무력행사나 또는 기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교황의 의견이 왜 중요한지 궁금해할지 모른다. 교황은 배치할 군대도 없고 유용할 경제력도 거의 없는 미약한 종교 지도자일 뿐인데, 누가 신경 쓰겠나? 하나의 쉬운 대답으로, 만일 당신이 교황이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고 믿지 않는다면, 부분적으로 고 요한 바오로2세가 공산주의 붕괴에 미친 영향 때문에 직장을 잃은 동부 유럽에 걸친 구 소비에트 정치국원들과 얘기해보면 알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면, 최근에 교황의 개입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새로운 사례가 있었는데, 이것은 프란치스코와 관련이 있다.

Former Australian Foreign Minister Bob Carr, who served from March 2012 to September 2013, recently published a set of memoirs. Among other things, he revealed details of a September 2013 meeting of the G20 group of nations in St. Petersburg, where the Obama administration and its Western allies faced pressure not to use force to punish Syrian President Bashar Assad after charges his regime had used chemical weapons.

2012년 3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재임했던 전 호주 외교부 장관 봅 카는 최근 회고록을 출간했다. 여러 가지 중에서, 그는 오바마 행정부와 서방 동맹국들이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처벌하는 데 무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압력에 직면했던 2013년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G20 정상회의의 상세한 내용을 밝혔다.

Prior to that meeting, Pope Francis had written to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who was hosting the G20 summit, urging the nations “to lay aside the futile pursuit of a military solution.”

회의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G20 정상 회담 개최국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국가들이 “군사적 해결책의 헛된 추구를 제쳐놓으라”고 촉구했다.

The letter had been released by the Vatican as part of the pope’s push against any use of force, which also included calling a day of prayer and fasting for peace in Syria on Sept. 7.

바티칸은 어떠한 무력 사용도 반대한다는 교황의 압박의 일환으로 이 편지를 공개하며, 9월 7일 시리아의 평화를 위한 기도와 금식을 요청하기도 했다.

Carr reveals that during the behind-closed-doors debate, Italy’s Prime Minister at the time, Enrico Letta, said that while he’d like to support the Americans, the pope’s letter “is a big factor for me domestically.”

카 전 장관은 비밀 토론 중에 엔리코 레타 당시 이탈리아 총리가 그는 미국을 지지하고 싶지만 교황의 편지가 “내겐 국내적으로 큰 요인이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We must insist that we need to find a way to sanction any intervention,” Carr quotes Letta as saying. “If everyone is convinced it was Assad, then we need UN Security Council authorisation.”

“어떠한 개입이라도 승인하려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레타 전 총리의 말을 카 전 장관이 인용한다. “모두가 아사드의 범죄를 확신한다면, 그 다음 우리는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With Russia and China as permanent members of the Security Council, Letta knew full well that by making its approval a deal-breaker, he was effectively saying no to the use of force.

러시아와 중국이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상황에서, 레타 전 총리는 안보리의 승인을 협상을 깨는 요인으로 삼음으로써 무력 사용에 반대한다고 효과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Later, Carr recounts Putin’s remarks to the other heads of state. As he tells it, Putin ended by saying “we might listen to the pope,” and then quoted from Francis’ letter about the need to avoid force.

후에 카 전 장관은 푸틴의 다른 국가 정상들에 대한 언급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기를, 푸틴은 “우리가 교황의 말을 듣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며 끝냈으며 프란치스코의 무력 방지의 필요성에 관한 편지를 인용했다.

“Bang!” Carr writes. “Cop that!”

“탕!” 카 전 장관은 쓴다. “체포하라”

Granted, had Francis’ position not aligned with Russia’s, Putin might not have been so eager to cite him. Granted, too, Letta’s government in Italy was in dire straits and, even without the pope, he might have shrunk from a conflict he knew would be controversial.

분명히, 프란치스코의 입장이 러시아의 입장과 같지 않았다면, 푸틴은 그렇게 열심히 그를 언급하려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레타의 정부 또한 곤경에 빠져 있었으며, 그는 교황의 편지가 아니었더라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충돌은 피하려 했을 것이다.

Still, what Carr’s memoirs illustrate is that without being physically present, Francis was nevertheless a force in that G20 meeting. It’s an object lesson in why popes matter, regardless of what one makes of their spiritual claims.

하지만, 카의 회고록이 묘사하는 것은 프란치스코는 직접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도 G20 회의에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과 무관하게 왜 교황이 중요한지의 한 실례이다.

Anxiety over anti-abuse commission

성추행 대책위원회에 대한 우려

Speaking of Australian VIPs, Cardinal George Pell this week testified before the country’s Royal Commission looking into sexual abuse cases in the Catholic Church via a video link from Rome. He was being asked about a response plan he put into place while serving as Archbishop of Melbourne in 1996.

호주의 VIP와 관련해 이야기하면, 조지 펠 추기경은 이번 주 교회 내 성추행 사건 조사로 왕립 위원회에서 증언했고 이 증언은 로마로 화상중계됐다. 펠 추기경은 1996년 멜버른 대주교로 재임할 당시 취했던 대응 방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Pell is today Francis’ finance czar, by consensus a powerful figure in his papacy.

펠은 프란치스코의 교황청 재무원장으로 현 교황 체제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The most common term used in Australian media accounts to characterize Pell’s testimony on Thursday has been “defiant.” While stating that his priority always was helping victims heal, Pell refused to give ground on three key fronts.

지난 목요일 호주 언론들이 펠 추기경의 증언을 보도하면서 가장 많이 썼던 용어는 “반항적인”이란 단어다. 그는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는 일이 늘 우선순위였다고 주장하면서도 세 가지 핵심 논거에 대한 근거 제시는 거부했다.

• He defended a compensation scheme in Melbourne that capped payouts to victims at $50,000, saying some might have received nothing if they went to court.

그는 멜버른에서 만약 법정으로 갔다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을 거라며 피해자들에게 5만 달러를 보상하는 방안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 He insisted that culpability for abuse should not be “foisted” on Church leaders if clergy acted without the knowledge of their superiors. He compared the Church to a trucking company, arguing that if a driver molests a woman in violation of company policy then the company isn’t at fault.

그는 성직자가 자신의 상관에 대한 인식 없이 행동했다면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성추행 유죄성을 “끼워넣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했다. 그는 교회를 트럭 회사에 비유하면서 만약 트럭 운전사가 회사 규정을 위반해 여성을 희롱했다면 회사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 He defended a Vatican decision not to turn over all documents in its possession regarding accused Australian clerics, arguing that it’s “neither possible nor appropriate” to expect a sovereign state to disclose internal working papers. Pell added that the Vatican would provide documents on an as-needed basis, and claimed that virtually everything the commission wants is already available in Australia.

그는 호주 사제들의 기소와 관련해, 주권 국가가 내부 문서들을 공개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주장하며 바티칸이 보유한 문서들을 넘기지 않기로 한 바티칸의 결정을 옹호했다. 그는 바티칸이 필요에 따라 문서를 제공해야 하며 사실상 위원회가 요구한 모든 것들을 이미 호주에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Reaction will likely reflect one’s broader assessment of the Church’s response to the abuse scandals. For those inclined to believe the Church has bent over backwards to accommodate critics, and that it’s being held to an unfair standard, Pell’s willingness to draw lines in the sand probably will come off as reasonable and long overdue. For those who regard the response as woefully incomplete, Pell’s testimony will loom as the latest chapter in a pattern of stonewalling.

이에 대한 대응은 성추행 스캔들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전반적으로 평가할 근거가 될 전망이다. 교회가 비판자들을 누그러뜨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불공정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펠 추기경의 선긋기 시도는 아마 합당하고 긴 시효를 얻어낼 것이다. 대응이 끔찍할 정도로 불완전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펠 추기경의 증언은 가장 최근 버전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보일 것이다.

In any event, the appearance is a reminder that debates over the abuse scandals are far from resolved. While Pope Francis’ general popularity provides the Church some insulation from blowback, there’s no guarantee that will last forever.

어떤 사건에서든, 외적으로는 성추행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은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상기시켜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중적인 인기가 교회에 미칠 역풍에 다소간 완충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This insight helps explain why in the Church’s reform wing vis-à-vis the abuse scandals, there’s growing concern about a perceived stall at the new Pontific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Minors, launched in December 2013 to be the cutting edge of the clean-up operation. The commission, which includes Cardinal Sean P. O’Malley of Boston, was instrumental in engineering Francis’ first meeting with abuse victims on July 7.

이러한 통찰은 왜 교회의 개혁 부서가 성추행 스캔들과 마주하고 있는지, 2013년 12월 개혁 작업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라며 출범한 새로운 교황청 아동보호위원회의 활동이 지체되는 데 대한 우려가 왜 커지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스턴 교구의 션 P 오말리 추기경이 포함된 이 위원회는 지난 7월 7일 성추행 피해자들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만남을 주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While there’s been plenty of work behind the scenes, statutes for the commission have not been officially approved, new members representing other parts of the world have not been appointed, and decisions about where the commission will be located and what its leadership will be have not been announced. Aside from the victims’ meeting, the commission has not launched any public initiative that would provide some indication of its priorities and direction.

비밀리에 수많은 작업이 진행됐지만, 위원회의 정관들은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았고, 세계의 다른 지역들을 대표하는 새 위원들이 임명되지 않았으며, 어디에 위원회가 위치할지, 어떻게 지도부를 구성할지에 대한 결정이 아직도 발표되지 않았다. 희생자들과의 만남 외에, 위원회는 아직 그 우선순위와 방향에 대한 지표를 제공해줄 어떤 공개적인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All this stands in contrast to the rapid pace at which the financial reform launched by Francis and spearheaded by Pell is moving.

이 모든 상황은 프란치스코에 의해 시작되고 펠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재정 개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What reformers in the Church are saying, for now just on background, is that the commission needs to do something soon to create the impression of momentum. What they don’t want is for people to draw the conclusion that while managing money matters under this pope, protecting children is a comparative afterthought.

교회 개혁가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로선 배경역할만을 하고 있지만 위원회는 추진력 있다는 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곧 무엇인가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번 교황 치세에는 돈 관리가 중요하고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비교적 덜 중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길 원하지는 않는다.

 

[번역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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