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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듯, 국민 여러분도 잊지 말아주세요.

외신,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듯, 국민 여러분도 잊지 말아주세요.
-외신들, 단원고 학생 학교 등교 일제히 보도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독재자 아버지 때부터 안전문제 소홀

세월호 사고로 친구들을 잃고 겨우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온 첫 등교를 전 세계의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사망한 친구들의 부모들이 흐느끼는 가운데 이루어진 등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내걸린 현수막,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학생들, 친구 부모들과의 서글픈 포옹…….그리고 분노, 비탄, 깊은 후회. 외신들은 이 슬픈 등교를 보도하며 정부당국의 무능한 대처가 더 큰 희생을 가져왔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외신들은 돌아온 단원고 학생들이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고, 왜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야만 했는지에 대해 확실한 조사를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많은 외신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일랜드의 최대 일간지인 인디펜던트가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박정희 시대부터 이어진 경제발전 우선과 안전에 대한 소홀함을 지적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아이리시 인디펜던트는 25일 ‘South Korea Ferry survivors return to school -한국 여객선 생존자들 등교 재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십 년 동안 안전에 대한 부주의 끝에, 많은 한국인들은 64년 전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의 폐허 이후, 빠른 경제 개발을 무엇보다도 먼저 추구하느라 안전문제를 소홀히 다뤄왔던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제야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인디펜던트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경제부흥기 동안 지배했던 독재자 아버지를 둔 박근혜 대통령의 정부는, 침몰 전 안전과 감시 문제에 관해 더 노력했어야 했고 정부의 무능력이 구조활동을 망쳤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이번 참사가 일어난 한국의 안전불감증 문제를 박근혜의 아버지 독재자 박정희 때부터 연원을 거슬러 올라갔다. 

인디펜던트는 무분별한 질문으로 생존 학생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들도 소개해 부끄럽고 배려 없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인디펜던트는 ‘친구들을 “배신”하고 살아 돌아왔다는 말로 생존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몇몇 사람들까지 있었다’는 신영진군의 말을 전하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파오고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복받쳐 눈물을 흘린다”는 아픈 이야기를 보도해 잔인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뒤돌아보게 했다.

인디펜던트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듯, 국민 여러분들도 잊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나라를 이끄는 모든 어른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찾아주길 바란다”는 돌아온 학생들의 국민과 정부에 대한 소망을 전했다.

돌아온 학생들과 그리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친구들……. 그러나 이 정부는 무엇 하나 제대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어 많은 비난을 사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새정치연합 위원들이 청와대에 요구한 185건의 자료 중 한 건도 보내지 않는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어 과연 이 정부가 세월호 진상조사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는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임을 했던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보다는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무시하고 대결을 선포한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능한데다 파렴치하기까지 한 이 정부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는 길을 무엇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아이리시 인디펜던트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elisabeth

기사 바로가기☞    http://bit.ly/1iJoutH

 

South Korea Ferry survivors return to school

한국 여객선 생존자들 등교 재개

Published 25/06/2014|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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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wol sank in waters off the southern coast of South Korea in April (AP)

세월호가 지난 4월 한국 남서쪽 해안에서 침몰했다(AP)

As parents of the dead wept, more than 70 teenagers who survived a ferry sinking in South Korea that killed hundreds of their schoolmates walked in a sombre procession to their first classes since the April disaster. Some of the 73 students, wearing white and black uniforms and carrying book bags, bowed their heads as they cried and walked slowly from a bus to the entrance of Danwon High School in Ansan, outside of Seoul.

사망학생 부모들이 흐느끼는 가운데, 학교 친구들 수백 명이 사망한 한국의 여객선 침몰사고에서 살아남은 70여 명의 10대 학생들이 4월 참사 이후 첫 등교를 위해 침울한 행렬을 이어갔다. 흰색과 검정색 교복 차림에 책가방을 맨 73명의 학생 중 일부는 눈물을 흘리며 머리 숙여 인사하기도 했고, 버스에 내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Some stopped to hug the parents of their friends, while a large banner reading “We pray the dead will rest in peace” was hung up on the school entrance gate.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린 정문 앞에서, 일부 학생들은 그들 친구들의 부모들과 포옹하기 위해 멈추었다.

The anger, grief and deep remorse at the school was a reflection of what many South Koreans have felt since the April 16 sinking that left more than 300 people dead or missing. Of the 325 students on a class trip to the southern holiday island of Jeju, 75 were rescued, 245 died and five are still missing. Two of those rescued had already returned to school, officials said.

이 학교에서의 분노, 비탄, 깊은 후회는 300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된 4월 16일의 침몰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느껴온 것들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남쪽 휴양섬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325명의 학생들 중에서, 75명이 구조됐으며, 245명은 사망했고, 5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구조된 학생들 중 2명은 이미 학교로 돌아왔다고 관계당국이 말했다.

The return to classes of the survivors, who had been staying at a facility in Ansan where they had classes and therapy sessions, comes amid court hearings for the ferry crew and the officials from the company that owned it. Many South Koreans also fault the government, the coast guard and even society for failing the victims.

수업과 치료를 병행하기 위해 안산에 있는 한 시설에 머물러 왔던 생존자들의 수업 복귀는 선원들 및 선박 소유 회사 임원들에 대한 법원의 심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또한 희생자들을 구하지 못한 데 대해 정부와 해경 그리고 심지어 사회마저 비난한다.

“We ask for a thorough investigation to find out why our friends and teachers had to become victims and why the rescue efforts didn’t proceed properly and lead to more victims,” one of the surviving students, Shin Young-jin, said in an emotional address.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왜 희생되어야만 했고, 왜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야만 했는지에 대해 확실한 조사를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생존 학생 중 한명인 신영진 학생이 감정적인 연설에서 말했다.

“We hope that you will try to create a safer nation so that such a horrible accident never happens again.“

“앞으로는 이번 사고와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다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해주시길 바란다.”

After decades of negligence, many South Koreans are now questioning the country’s history of ignoring safety issues as it pursued rapid economic development above all else following the devastation of the Korean War, which began 64 years ago with a North Korean invasion.

수십 년 동안 안전에 대한 부주의 끝에, 많은 한국인들은 64년 전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의 폐허 이후, 빠른 경제 개발을 무엇보다도 먼저 추구하느라 안전문제를 소홀히 다뤄왔던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제야 의문을 던지고 있다.

The government of president Park Geun-hye, whose dictator father ruled during the economic boom in the 1960s and 1970s, has been battered by criticism that it should have done more before the sinking on safety and monitoring issues and that its incompetence botched the rescue operations.

1960년대와 70년대의 경제부흥기 동안 지배했던 독재자 아버지를 둔 박근혜 대통령의 정부는, 침몰 전 안전과 감시 문제에 관해 더 노력했어야 했고 정부의 무능력이 구조활동을 망쳤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The 15 crew members responsible for navigating the Sewol ferry face charges of negligence for failing to perform their duties to rescue passengers. Prosecutors say they abandoned the ship even though they knew passengers would be trapped and killed when the ferry sank.

세월호의 항해를 담당했던 15명의 선박직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구조해야 할 그들의 의무수행에 실패한 과실 혐의를 받고 있다. 검사들은 그들이 여객선이 침몰하면 승객들이 갇히고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를 포기하였다고 말한다.

The defence has denied any collusion, saying the crew members were confused, injured and panicked.

변호인측은 선박직 승무원들이 당황하였고 부상을 당했고 혼란에 빠졌다고 말하며 어떠한 공모도 없었다고 했다.

Student Shin added that many people have tried to console the surviving students, but others have asked “unpleasant” questions that have reminded them of the sinking and made them feel guilty.

학생 신 군은 많은 사람들이 생존 학생들을 위로하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이들은 침몰을 회상시키는 “불쾌한” 질문들을 해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고 전했다.

He said some people were even “burying daggers in our hearts” by saying the survivors “betrayed” their classmates by coming back alive. “Whenever we heard such things, our hearts tore apart and ached and we shed tears because we felt guilty and sorry for our friends,” he said.

그는 친구들을 “배신”하고 살아 돌아왔다는 말로 생존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몇몇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파오고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복받쳐 눈물을 흘린다”고 학생은 말했다.

“Just as we cannot forget them, we ask that the citizens of this country also never forget them.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듯, 국민 여러분들도 잊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For the adults who lead us, we ask that you exhaustively search for those responsible for this crime.”

“나라를 이끄는 모든 어른들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찾아주길 바란다.”

 

[번역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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