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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글렌데일 소녀상 철거 소송 ‘경멸스럽다’

포브스, 글렌데일 소녀상 철거 소송 ‘경멸스럽다’
-유태인 홀로코스트 기념비라면 철거소송 가능할까?
-美 유명 법률회사 수임, 매춘부 입증 시도
-법률전문가들 ‘혐오스럽다’, ‘역겹고 경멸스럽다’

포브스가 글렌데일에 세워진 일군 강제동원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소송을 맡은 미국 유명 법률회사에게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어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고 나섰다. 특히 포브스는 만약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를 기리는 기념비였다면 이 소송을 맡을 법률회사가 과연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아마도 미국 법률회사들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저 멀리 달아났을 것이고 명예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회사라도 평판에 흠을 낼만한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포브스는 미국 최고의 법률회사가 사상 최저로 낮아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미국 20대 법률회사 중 하나인 시카고에 기반을 둔 메이어 브라운 법률회사의 로스엔젤레스 오피스가 소위 위안부 – 이차대전중 일본제국 군대에 의해 성노예로 이용됐던 -가 단순히 흔하게 볼 수 있는 매춘부였음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하며 이 소송의 전말, 그리고 일본군이 저지른 강제동원 위안부 참혹한 역사적 사실들을 되짚고 있다. 포브스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역사의 기록이 제국 군대의 사창가에서 봉사한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여성들이 일본의 이전의 식민지들로부터 총을 겨눈 상태로 잡혀갔으며 성노예로 강요됐음을 보여준다’고 단정지었다.

포브스는 이러한 사실이 1948년 네덜란드 법정에서 증명되었다며 이 일로 한 일본군 간부가 처형당했고 11명의 일본 시민들은 징역형을 받았으며 1956년도에는 일본 정부를 압박하여 피해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포브스가 폭로한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번 소송을 의뢰한 GAHT-US가 풀네임은 <미국-역사적 진실을 위한 세계 동맹>이지만 이 이름이 전혀 다른 단체인 <아시아의 2차 세계대전의 역사 보존을 위한 세계 동맹>과 혼동되도록 의도적으로 선택됐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2차 세계대전의 역사 보존을 위한 세계 동맹>은 중국계 미국인 교수들에 의해 설립된 오랜 전통의 절대적으로 명망 있는 학술단체로서 종군 위안부 논쟁에서 GAHT-US와 반대편에 서 있으며 GAHT-US가 그러한 명칭을 선택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위한 세계 동맹“을 이용한 구글 검색의 처음 두 결과는 이 중국계 미국인들의 단체를 보여주어, 마치 명망 높은 중국계 미국인들이 위안부 여성들을 매춘부로 매도하려는 시도를 공개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일본인들의 잔악한 잔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은 소녀상이 미국에 있어서는 안 되고 일본이나 한국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과거에 행해진 불의(不義)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들이 타민족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그다지 특이할 것은 없다며 ‘미국에서만 유태인 대학살을 기리는 데에 45개의 기념물, 아일랜드의 대기근에 16개, 그리고 오토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6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포브스는 여기에서 ‘왜 미국의 최상위 20개 법률회사 안에 드는 메이어 브라운 사가 이 소송을 맡는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메이어 브라운은 아시아에서 사업을 크게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 대형 의뢰인의 부탁이 있어서거나 혹은 아시아 쪽 사업을 일본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로 이 일을 맡은 것일 것이다”는 켄 화이트 웹사이트 논평자의 말을 소개하며 결론을 내리고 있다.

어떠한 진심어린 사과와 성의 있는 보상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강제동원 위안부 할머니들을 매춘부라고 두 번 죽이는 천인공노할 짓을 서슴지 않는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과 돈을 위해 이들 소송대리인으로 나선 미 최고의 법률회사의 추악한 유착관계를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데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 정부보다 고마운 포브스가 아닐까 싶다.

다음은 뉴스프로의 포브스 전문번역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onforb.es/Q9pElo

 

“Disgusting!,” Cry Legal Experts: Is This The Lowest A Top U.S. Law Firm Has Ever Stooped?

“혐오스럽다!”고 법률 전문가들이 외친다: 최고의 미국 법률회사가 사상 최저로 낮아진 예인가?

4/13/2014, For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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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uld any self-respecting U.S. law firm represent a client who suggested the Jews deserved the Holocaust? Probably not. As a matter of honor, most law firms would run a mile, and even the least honorable would conclude that the damage to their reputation wasn’t worth it.

자존심을 지킬 줄 아는 미국 법률회사라면 유태인들이 홀로코스트를 겪어 마땅했다고 믿는 고객을 대변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법률회사들은 아마 저멀리 달아났을 것이고 명예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회사라도 평판에 흠을 낼만한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Where imperial Japan’s atrocities are concerned, however, at least one top U.S. law firm hasn’t been so choosy. In what is surely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civil suits ever filed in the United States, the Los Angeles office of Chicago-based Mayer Brown is trying to prove that the so-called comfort women – the sex slaves used by the Imperial Japanese Army in World War II – were no more than common prostitutes.

일본 제국의 잔혹한 역사와 관여해서 최소한 한 곳의 미국 최고 법률회사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논란 많은 민사 소송중 하나가 될 이 사건에서 시카고에 기반을 둔 메이어 브라운 법률회사의 로스엔젤레스 오피스는 소위 위안부 – 이차대전중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로 이용됐던 -가 단순히 흔하게 볼 수 있는 매춘부였음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The suit has been filed on behalf of two Japanese-Americans, Michiko Shiota Gingery and Koichi Mera, plus a corporation called GAHT-US (a bizarre entity whose involvement must be a particular embarrassment to any decent person at Mayer Brown – more about this in a moment). At the center of the controversy is a Korean-funded memorial to the comfort women which was recently established in a park in Glendale, California. The suit suggests that the above named Japanese-Americans will suffer “irreparable injury” from “feelings of exclusion, discomfort, and anger” if the memorial is not removed.

이 소송은 두 사람의 일본계 미국인 미치코 시오타 진저리와 코이치 메라, 그리고 GAHT-US (괴상한 이름으로 이 회사와 관련되는 것이 메이어 브라운의 어느 괜찮은 사람에게도 아주 창피한 일일 것이다 –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뒤에 다뤄진다) 라는 회사의 이름으로 접수됐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한국이 기금을 지원해 최근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의 공원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이다. 소송은 위에 이름이 언급된 두 사람이 만일 그 기념동상이 철거되지 않는다면 “배타, 불쾌, 분노 등의 감정”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임을 주장한다.

This is, of course, the functional equivalent of suggesting that German-Americans suffer “irreparable injury” from memorials to the Jewish Holocaust.

이것은 당연히 독일계 미국인이 유태인 대학살의 기념비로 인해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고통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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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izing the comfort women issue: 65 years after the truth was established in a Dutch court room,
a top American law firm says the victims of one of World War II’s worst atrocities are liars. (Photo credit: theogeo)
위안부 문제 홍보: 네델란드 법정에서 사실이 밝혀지고 65년 후, 한 미국 최고의 법률회사가 제2차
세계 대전시 가장 포악한 잔혹행위들 중 하나의 피해자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다. (사진: theogeo)

Although the suit has so far received little attention in the mainstream American press, it has provoked outrage elsewhere, not least in London where the noted British commentator Robert Fisk has provided a particularly trenchant account. It has also sparked a firestorm among legal bloggers. Here, for instance, is a comment from Ken White, a prominent Los Angeles-based criminal attorney: “I cannot remember a lawsuit that so immediately repulsed and enraged…..This lawsuit is thoroughly contemptible. It should fail, and everyone involved should face severe social consequences.”

이 소송은 현재까지 미국 주류언론의 관심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분노를 유발시켰다 – 특히 런던에서 유명한 영국 논객 로버트 피스크는 특별히 신랄한 해석을 제공했다. 이것은 또한 법률관련 블로거들 사이에 불꽃튀는 논쟁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서, 여기 로스엔젤레스에 기반을 둔 저명한 형사전문 변호사 켄 화이트의 논평을 소개한다: “나는 이처럼 곧바로 역겹고 화가 나는 소송을 기억할 수가 없다…이 소송은 철저하게 경멸스럽다. 이 소송은 패해야하며, 관련자 모두는 극심한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한다.”

Strong words but White’s assessment is hard to fault. The indisputable historical record, after all, shows that countless women who served in the Imperial Army’s brothels were innocents seized at gunpoint in Japan’s erstwhile colonies and forced into sexual servitude. (Yes, of course, not all were innocents. The army’s first recourse was to professional prostitutes but even if every prostitute in the empire had volunteered for such a hellish assignment, there were far too few of them to serve the army’s needs. Japan’s war was vast, spread as it was across six time zones and involving at least six million men, most of whom seem never to have had any home leave. )

강한 표현이지만 화이트의 견해는 틀린 곳이 거의 없다. 결국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역사의 기록이 제국 군대의 사창가에서 봉사한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여성들이 일본의 이전의 식민지들로부터 총을 겨눈 상태로 잡혀갔으며 성노예로 강요됐음을 보여준다. (그래, 물론 모두가 무고한 것은 아니다. 제국군의 첫 재원은 직업 매춘부였으나, 제국의 모든 매춘부가 지옥같은 임무에 자원했다고 해도 제국군의 필요를 충당하기에는 그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일본의 전쟁은 방대해서 6개의 시간대를 가로질러 있을 정도로 광범위했으며, 최소 6백만명의 남성들이 이에 참여했고 이들 대부분은 집으로의 휴가를 전혀 갖지 못했던 듯하다.)

On the basis of 27 years of on-the-spot Japan-watching in Tokyo, I can report that Mayer Brown’s suggestion that the facts “remain an active topic of political debate” is sheerest sophistry.

27년 간 도쿄에 살며 일본을 현장에서 목격한 경험을 기반으로, 나는 이 사실이 “여전히 정치적 논쟁의 적극적인 주제로 남아 있다”는 메이어 브라운의 주장은 절대적으로 궤변임을 보고할 수 있다.

There are no two sides to this issue and no decent Japanese citizen I have ever met questions the validity of the comfort women’s allegations. Anyone who does has a manipulative agenda and doesn’t believe a word he is saying.

이 이슈에는 상반된 두 가지 주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여지껏 만나본 괜찮은 일본 시민 중 위안부 여성들의 주장이 정당함에 의문을 던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누군가 의문시한다면 이 사람은 어떤 숨겨진 아젠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자신이 하는 말을 스스로도 믿지 않는다.

Even the Japanese government has admitted as much. Japanese Chief Cabinet Secretary Yohei Kono issued a widely publicized statement in 1993 acknowledging that there were “many cases” of agents acting on behalf of the Imperial Army “intimidating these women to be recruited against their will.”

일본 정부조차도 그만큼은 인정했다. 일본 관방장관 요헤이 고노는 1993년, 널리 알려진 담화를 발표해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대리인들이 “여성들을 협박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징집한” “많은 경우”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The statement went on tacitly to acknowledge the comfort women’s enslaved status: “In the war areas, these women were forced to move with the military under constant military control and that they were deprived of their freedom and had to endure misery.”

이 담화는 계속해서 위안부의 노예화 된 상태를 인정하기까지 했다: “전쟁지역에서 이 여인들은 전적으로 군대의 통제하에 군대와 함께 강제로 이동해야만 했고 자유를 박탈당했고 비참함을 견뎌야만 했다.”

The Kono statement was treated as front-page news by the American press at the time, but was hardly new news. To be sure it had been preceded by a long series of denials in Tokyo, a record taken at face value by an ever naïve American press; but the main allegations had been proved in a Dutch court under Western rules of evidence as far back as 1948. That court, which had been convened in what was then the Dutch East Indies (now Indonesia), had considered allegations that Japanese army officers had forced many Dutch women seized in the Dutch East Indies into sexual slavery. One Japanese military official was executed and eleven other Japanese citizens were sentenced to jail terms. The Dutch went on in 1956 successfully to press the Japanese government to pay compensation to the women, an almost unheard-of achievement in Western diplomacy (the Japanese establishment has otherwise proved highly successful in stonewalling compensation claims from countless victims of other atrocities). In 1985 details of the comfort women story were published in an official Dutch government history of the war. For more detail on the Dutch side of the story click here.

고노 담화는 그 당시 미국언론에 의해 일면 기사로 취급됐지만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다. 담화는 확실히 일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부인해온 다음에 나온 것이었고, 순진한 미국 언론은 일본의 부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에 관한 주된 혐의는 이미 19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방의 증거 법칙하에서 네덜란드 법정에서 증명된 것이었다. 그 법정은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 (현재는 인도네시아) 에서 소집된 것으로 일본군 장교들이 동인도에서 포로로 잡은 수많은 네덜란드 여인들을 성노예로 강요했다는 혐의들을 검토했다. 한 군간부는 처형됐고 11명의 일본 시민들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네덜란드는 이에 이어 1956년에는 성공적으로 일본정부를 압박해서 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해서 서방외교에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혁혁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것 말고는 일본정부는 다른 잔학행위의 수많은 희생자들이 보상요구를 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아왔다). 1985년 위안부의 자세한 이야기가 네덜란드 정부의 공식적인 전쟁의 역사로 출간됐다. 네덜란드쪽 이야기의 더 상세한 내용을 원하면 여기를 클릭할 것.

One of the more striking aspects of the case against Imperial Japan is that so many women of so many nationalities — Korean, Chinese, Taiwanese, Filipinas, Burmese, Vietnamese, and Dutch, among others — closely agreed on the details. Not the least telling detail is that though modern Japan had a long previous history of militarism (it had fought several wars in the late nineteenth and early twentieth centuries), allegations of sexual slavery first surfaced in the 1930s. Up to that time Japan had been exemplary in abiding by the Geneva Conventions, including those on the treatment of women. It was a strategy aimed at winning diplomatic and economic acceptance for Japan as a “civilized nation” that was the equal of the then world-dominant Great Powers of the West. The fact that there had been virtually no complaints about Japanese military’s sexual behavior before the 1930s and then such complaints suddenly became a torrent is consistent with another evidence that Tokyo broke decisively with the Geneva Conventions in the early 1930s in a new policy of no-holds-barred warfare.

일본제국주의에 반하는 이 사건의 보다 충격적인 국면들 중 하나는 한국인, 중국인, 대만인, 필리핀인, 버마인, 베트남인, 네덜란드인과 기타 여러 나라의등 국적을 가진 그렇게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부적인 면에서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세부사항을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현대 일본이 이전에도 군국주의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많은 전쟁을 했다), 성노예의 혐의가 처음으로 표면화된 것은 1930년 대였다는 사실이다. 그 때까지 일본은 여성들에 대한 처우 등에 관한 것들을 포함한 제네바협정을 지키는 것에 있어 전형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었다. 그것은 그 무렵 서양의 세계를 지배하는 강력한 세력과 동등한 “문명국가”로서 일본이 외교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목표로 한 일본의 전략이었다. 1930년대 이전에는 일본군대의 성적 행위에 대해 아무런 불평이 없었으며 그 바로 다음에 갑자기 불평이 터져나온 사실은 일본이 1930년대 초에 전면전을 벌이기 위한 새로운 정책으로 제네바 회담을 단호하게 파기했다는 다른 증거와도 일맥상통한다.

As for GAHT-US, its full name is the Global Alliance for Historical Truth-US. If that sounds impressive, its genesis is less so. It was incorporated as recently as February 6 and uses a UPS office as its official address. The really controversial part is that its name has evidently been chosen so it would be confused with a very different entity, the Global Alliance for Preserving the History of WWII in Asia. This latter is a long-established, entirely respectable scholarly group founded by Chinese-American professors that is on the other side of the comfort women argument. The first two responses to a Google search today for “Global Alliance for Historical Truth” brought up the Chinese-American entity, thus suggesting that respectable Chinese-American opinion endorses the effort to brand the comfort women as prostitutes.

GAHT-US에 대해 설명하지면, 풀네임은 <미국-역사적 진실을 위한 세계 동맹>이다. 그것이 멋지게 들릴지 모르나 이것의 유래는 그렇게 멋지지 않다. 이 회사는 최근에, 지난 2월 6일에 설립됐고 공식주소로 UPS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 진정한 논란거리가 되는 부분은 이 이름이 전혀 다른 단체인 <아시아의 2차 세계대전의 역사 보존을 위한 세계 동맹>과 혼동되도록 의도적으로 선택됐다는 점이다. 후자는 중국계 미국인 교수들에 의해 설립된 오랜 전통의 절대적으로 명망 있는 학술단체로서 위안부 논쟁에서 다른 편을 들고 있다. 오늘 “역사적 진실을 위한 세계 동맹“을 이용한 구글 검색의 처음 두 결과는 이 중국계 미국인들의 단체를 보여주어, 마치 명망 높은 중국계 미국인들이 위안부 여성들을 매춘부로 매도하려는 시도를 공개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For the record I reached Michiko Shiota Gingery by phone and asked her whether she really believes the comfort women are lying. In avoiding the question, she argued that the memorial had no place in America and should be located instead in Korea or Japan. This echoed an opinion voiced by other opponents of the memorial but it seems a bit selective. The fact is that ethnic Koreans constitute a significant minority in Glendale and it is not unusual for other ethnic groups to erect monuments remembering past injustices. If Wikipedia is to be relied on, there are 45 memorials to the Jewish Holocaust alone in the United States, sixteen to the Irish famine, and six to the Ottoman Turks’ genocide of Armenians.

정확을 기하기 위해 미치코 시오타 진저리와 전화로 연결해 위안부 여성들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정말로 믿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피하면서 그녀는 그 기념물은 미국에 있어서는 안되고 일본이나 한국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기념물에 대해 반대하던 다른 사람들이 했던 주장과 비슷하지만 다소 선별적으로 들린다. 사실을 보자면 한국 동포들은 글렌데일에서 아주 소수집단이며, 과거에 행해진 불의(不義)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들이 타민족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그다지 특이할 것은 없다. Wikipedia가 믿을 만하다면 미국에서만 유태인 대학살을 기리는 데에 45개의 기념물, 아일랜드의 대기근에 16개, 그리고 오토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에 6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I emailed the four Mayer Brown attorneys involved in the case – Neil Soltman, Matthew Marmolejo, Ruth Zadikany, and Rebecca Johns – for a comment. I also emailed the firm’s chief executive Paul Theiss. I received no responses. Reached by phone, Soltman referred me to the firm’s public relations officer Bob Harris but Harris also failed to respond.

나는 이 사건을 담당하는 메이어 브라운 법률회사의 변호사 4명, 닐 솔트만, 매튜 마몰레요, 루스 자디카니 그리고 레베카 존에게 답변을 듣기 위해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또한 회사의 최고 경영자 폴 타이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는 아무 대답도 받지 못했다. 내가 전화했을 때 솔트만은 회사의 대외협력 담당자 밥 해리스와 통화하라고 했으나, 해리스 역시 내게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Should Mayer Brown have taken on this suit? Here is the opinion of the prominent First Amendment attorney Marc Randazza: “Every law firm gets confronted (on a pretty regular basis) with the question: ‘should I put my name on this?’ That soul searching comes into play when you wonder, ‘is this honorable?’ You know when it is, and when it isn’t. I’m not talking about representing a client that you know is guilty — they deserve a defense. I’m not talking about representing a really evil client — because there might be an important legal issue in play. I’m talking about when you do something truly disgusting.”

메이어 브라운 회사가 이 소송을 맡았어야만 했나? 저명한 미국 인권변호사 마크 란다자의 의견은 이렇다: “모든 법률회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상당히 자주)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 내 이름을 넣어야 하나?’ 당신이 ‘이 일이 명예로운 일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당신은 자신에 대한 고찰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당신은 그것이 명예로운 일인지 혹은 명예로운 일이 아닌지 안다. 당신이 죄가 있다고 여기는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 그들도 변호 받을 권리는 있다. 나는 정말로 사악한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 왜냐하면 중요한 법적 이슈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경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으로 혐오스러운 어떤 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Why therefore would Mayer Brown, which ranks among America’s top 20 corporate law firms, take on such a case? Beats me but one answer suggested by a commenter at Ken White’s website is probably worth passing on: “Mayer Brown has a heavy practice in Asia…. They are probably either doing this as a favor to a large client, or trying to expand their Asia presence to Japan.”

그러면 왜 미국의 최상위 20개 법률회사 안에 드는 메이어 브라운 사가 이 소송을 맡는 것일까? 나로선 전혀 짐작이 가질 않으나 켄 화이트 웹사이트의 한 논평자가 제시한 하나의 답은 아마도 고려할 가치가 있을 듯 하다: “메이어 브라운은 아시아에서 사업을 크게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 대형 의뢰인의 부탁이 있어서거나 혹은 아시아쪽 사업을 일본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로 이 일을 맡은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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